거장 이쾌대. 붓으로 그리는 열망
- Lang Kim(김태엽)
- 2015년 8월 23일
- 3분 분량
오랜만에 일요일날 집을 나섰다. 초가을이라 아직 날씨는 약간 후텁지근 했다. 내가 오늘 집을 아선 이유는 바로 거장 이쾌대의 미술전을 보기위해서. "이쾌대"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왠진 모르겠지만 이쾌대를 오늘 처음 들어본 나로서는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그 이쾌대 석자의 이름에 대한 느낌을 찾고 있었다. 무언가 시원하고, 쭉쭉 뻗어져 나가는 느낌?.. 나는 그렇게 잠정적으로 결론을 짓기로 했다.
이쾌대는 우리나라의 근대미술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대표적인 거장으로 미술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휘문고보에서 서양화가 장 발(1901-2001)을 담임교사로 만나면서부터 미술에 두각을 나타나기 시작했고, 휘문고보5학년 때, 1932년 미술가의 등용문인 <조선미술전람회>에 "정물"이란 작품으로 입선하였다. 그는 졸업 후 일본 제국 미술대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국립 현대미술관 이쾌대전 팜플랫 참조)
이쾌대는 앞으로 자신의 그림창작에 있어서 뮤즈가 될 사람. 그리고 평생의 배우자. 유갑봉과 결혼했다. 아내의 초상화에서 시작된 여인상은 점차 조선시대의 여성상으로 변화 하였고 그는 이후 여성을 자신이 처한 운명을 극복해 내가는 강인한 민족의 모습을 나타내면서 각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쾌대 전시중 전시장 입구에 그려진 세점의 화폭이 있다.그중 하나는 1938년에 그린 "상황"이라는 그림이다. 바닥에는 그릇이 깨져있고 한 여인이 나체상태로 앉아 절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한복을 입은 세 명의 여자들이 감싸고 있고, 그들 사이에 양복을 입은 한 남성이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채 굳게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이게 무슨상황일까? 그릇이 깨져있고, 한 여자가 나체상태로 절규하고 있으며 그 주위에는 세명의 여자가 둘러싸 무언가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물론 분위기는 암울했다. 나는 서서히 그림속으로 그리고 알 수 없는 그 상황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몰입했다. 그리고, 상상했다.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나체상태로 앉아 절규하고 있는 여자. 그 주위를 둘러사고 있는 세명의 여자들.., 위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걸로 보아 혼례를 치르게 될 신부일 것이다. 그럼 그 뒤에 웃고 있는 할머니는 혼례를 치를 때 옆에서 거들어 주는 들러리 같은 존재겠지. 손에 들고있는 비단과 식기를 통해 그런 역할임을 추측했다. 좋다. 혼례... 그럼 나체상태의 여자와 깨진 그릇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뒤에 양복을 입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남자는,.. 혹시 남편이 될 신랑? 조금 막장으로 해석을 해 보자면,. 저 나체의 여자는 원래 신랑과 결혼할 사이였는데, 한 여자가 끼어들어 그 여자의 모든것을 가로챈다. 혼례복까지 빼앗긴 여자는 앉아서 절규하고 이미 다른 여자한테 빠진 신랑은 애써 그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 좋다. 만약 그렇다고 치자. 그럼 이쾌대는 왜 그러한 그림을 그렸을까? 뜬금없이?..., 의문의 연속이다. 아마 이쾌대는 암울한 일제시대에 억압적인 사회분위기와 혼란스러운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 그림을 통해서 의문을 던지려고 했던게 아닐까?....,
반대편 전시실로 이동했을 때 제일 먼저 보이는 그림이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1940년대 작. 캔버스에 유채) 이었다. 곧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이쾌대의 눈을 나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지못해 눈을 내리깔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가 꼭 나에게 "너가 지금 정녕 독하게 살고 있느냐?"라고 묻고만 있는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쾌대의 왼손에 있는 저 팔레트가 난 부끄럽게 만들었다. 저 팔레트를 통해서 이쾌대가 그림에 얼마나 열정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로서는 저 왼손에 스마트 폰이 아니라 책이 있어야 할텐데,...

미술관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도 "중독"이라는게 존재 했을까? 물론 단어는 존재 했을 것이다. 이쾌대는 중독자였다. 그는 미술에 푹 빠졌다. 그리고 더이상 헤어나오지 못했다. 예술의 늪에서, 그는 심지어 일제의 암울한 시대의 그 모진 고통조차 여인상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하였다. 즉, 그는 헤어나오지 못한게 아니라, 헤어나오지 않았던 것이다.우리는 그것을 "열정"이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그 두 단어에 살고 울고 웃는다. 그들의 열정에 대한 분야는 다르다. 내가 열정이라는 단어를 써야할 곳은 "공부"이다. 난 학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게 아니다. 인생을 책으로 공부하진 않는다. 인성이란 우리의 고유한 영역을 책을 통해서 기계적으로 형성하지는 않는다. 다만 세상에 미생으로 부딫히면서 살아감으로서 차근차근 각자의 진도에 맞게 형성할 뿐이다.
오늘 거장 이쾌대는 나에게 이 미술전에서 "열정"이란 단어를 자세히 그리고 아주 깊히,... 내 마음속에 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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