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 Lang Kim(김태엽)
- 2015년 9월 25일
- 4분 분량
MMCA(국립 현대 미술관)-서울관의 세번째 방문. 저번에 보지 못한 "올해의 작가상"(Korea Artist Prize:SBS 문화재단 주관) "올해의 작가상" 시리즈를 보러가기 위해서이다. 그 날도 역시 더웠다. 그리고 새로운 일주일의 상쾌한 시작을 위해 나는 국립 현대 미술관에 가고 있었다. 버스비 왕복 3000원 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었기에 그 돈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현 SBS문화재단에서 주관하고 MMCA에서 전시하고 있는 "올해의 작가상" (이하 OAKP) 에서는 총 4명의 작가들이 설치,영상,조명미술을 통해 각자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 중에서 나는 "김기라"라는 작가의 작품이 유달리 기억에 남았다.
김기라는 퍼포먼스와 설치 영상작업을 통해 예술과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책임있는 태도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작가이다.(설명서 참고) 이해를 하고 보고 싶어 안내책자를 집어 미술관 내 카페에서 설명서를 읽어보았지만, 그를 달랑 한장으로 요약 설명되어 있는 설명서를 통해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 굳이 알고 봐야 하나?. 일단 작품부터 보고 내 방식대로 받아들이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전시장을 입장했다.
전시장 3번. 어두웠다. 입구에 스크린 2개가 있었다. 검정색 뿔테를 쓴 남자가 카메라를 줄에 매달고 서울거리를 걷는다. 한 화면은 그가 이동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화면은 어디론가 거칠게 끌려다니고 있는듯 했다. 그 화면은 김기라가 줄에 매단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이었다. 조금 당황했다. 아니 많이 황당했다. 이게 어떻게 작품이지?... 퍼포먼스로 보아 백남준이 1971년 뉴욕거리를 바이올린을 줄로 매달고 끌고다니 그 퍼포먼스 "길에 끌리는 바이올린"와 비슷한데..., 그 작품은 "떠다니는 마을 정부-소비자-개인-마을"이란 작품으로 작가가 사회의 단면과 고민을 보여주기 위해 사회 문화적 개념이 함축된 합성어로 이 용어를 선택하였다고 한다.
김기라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따사로운 했살과 서울광장을 찍은 모습, 그리고 김기라에 의해 끌려다니는 카메라의 거칠게 흔들리는 화면. 모순이었다. 나에게 그 두개의 화면은 한없이 높은 이상과 밑바닥과 다를 바 없는 현실. 이 둘 사이의 거리를 매스컴의 상징인 스크린 화면을 통해서 담담하게 그 둘 사이에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공허함이 느껴졌다. 적어도 나에겐.
-보이지 않아서 더 무겁다.-"김기라_이념의 무게,한 낮의 어둠"
그리고 적지않은 충격을 안겨주었던, "이념의 무게, 한낮의 어둠". 김기라의 영상미술이다. 나라가 혼란스러웠던 시기. 1970-80년대, 민주주의 라는 이념을 독재의 수단으로 사용한 거대한 정권 앞에서 짖밣혀야 했던 한 소년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고통받고 있는 한 피해자의 최면심리치료를 그대로 담은 영상을 통하여 당시의 광기어린 독재, 그에 맞선 당시 학생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끔찍한 고문방법, 그로 인한 개인의 상처를 담담히 전달한다. 영상내에서 피실험자 전승일 씨는 치료를 받는 동안 몸에 경련까지 일으키면서 지난날 받았던 모진 고문을 떠올린다. 분노한다. 울부짖는다.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위대하면서도 무서운 것이었다. 한 사람의 소중한 인생에, 가슴속에, 이념이 아닌 빼고 싶지만 뺄 수 없는 날카로운 관념으로 변해 파고들었다. 김기라는 약40분짜리 이 영상을 통해 당시 사회의 이념이란 진정 무엇이었는지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져 내릴 만큼 그렇게 무거운 것인지, 반복되는 영상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는것 같았다. 마음이 무거웠다.
-사적 공간은 지극히 정의된 무언가였다,-"오인환_상호 감상체계"+
4번 전시실, 김기라의 묵직한 공간을 지나 또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이번 전시는 전시실마다 각 작가의 주된 가치관과 특색이 확연히 들어나 그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핑크빛으로 도배된 방이 나타났다. 어두운데 있다가 갑자기 강렬한 색을 봐서인지 모르겠으나, 눈이 조금 아팠다. 아플만큼 방은 빈틈없이 핑크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화면속에는 군인들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핑크빛과, 군인이라...., 흥미롭군.." 헤드셋을 끼고 들어보았다. 군인들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마다 무언가를 조심스레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바로 본인들의 "사적인 공간".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군대 안에서 개인적인 공간을 만들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 저만의 사적인 공간이요?.. 하하, 저는 옥상입니다. 옥상에는 거의 올라오지 않아요.. 그래서 제 마음대로 옷을 벗고 태닝을 할 수 있어 좋죠.." 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아직 군대에 가기까지 4년이란 시간이 남았다. 그러나 내가 상상하는 군대의 모습은 사적인 공간을 만들고 그에대한 정의를 내릴 만큼 그렇게 유연한 공간은 아닐 것 같았다. 개인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공간일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영상을 보기까지는, 천천히 돌아 다니면서 인터뷰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화면 외에 눈에 밟히는 게 있었다. 휜색 글씨로 무언가 쓰여저 핑크및 방안을 감싸고 있었다. 작가가 생각하는 "사적인 공간"에 대한 정의를 쓴 것이라고 도슨트가 말해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개인적 공간이란, "무엇이든지 상상의 날개가 펼쳐지는 동화책 같은 존재이다" 야자가 끝나고 운동을 하고 난 뒤 침대에 누워 이런 상상을 한다. "내가 언젠간 잘나가는 패션애디터가 되어서 뉴욕 패션위크의 셀렙으로 초청받아 어떻게든 독설을 내뱉기 위해 쇼장에서 다리를 꼬고 안경을 치켜 올리며 모델들의 캣워크를 지켜보고 있겠지?,, 수트 코드는 단연 블랙. 올 블랙. 쇼를 보고 돌아와 나는 그날 쇼에대해 독설을 기사로 써내려 갈 것이고, 사람들은 나의 글에 열띤 관심을 보이겠지?.. 나의 칼럼이 다음날 아침 뉴욕타임즈에 대서특필 보도되는 거야!! "라면서 김친국 부터 마시며 내 혼자 즐거운 상상에 빠지는 곳. 이게 내의 사적인 공간이다. 나의 방이다. 우리 집이다.
미술에 대한 정의를 주제로 한 전시는 들어보았으나, "사적인 공간"을 주제로 한 전시회는 처음 봐서 그런지 정말 이색적이었고, 즐거웠다.
-나를 영원한 네버랜드로 대려다 줄 것 같았던, "나 현_바벨탑 프로젝트"
다음 전시실로 이동하였다. 깜짝 놀랐다. 이번엔 파란색이었다. 그리고 더 놀랐던것은..., "흙.." 와우, 흙이었다. 계달이 설치된 거대한 기하학적 모양은 한 물체에 올라가 보면, 흙이 있다. 거기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쇼크. 충격 그 자체였다. 신기했다.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 구조물을 만들게 된 동기는, 신선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심오했다.
"작가는 악마의 산과 난지도의 두 장소가 가지고 있는 근, 현대의 다양한 기억과 시간의 층위를 발굴하여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장치로서 목조무울을 설치하고, 그 속에 내재된 불안과 폭력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밑으로 려가 보면,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과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들의 인터뷰를 보여주며 다양한 언어와 민족의 기원과 확산을 담아내고 있는 난지도가 하나의 바벨탑임을 증명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바벨탑은 과거의 전설이다. 판타지가 아니라 현재에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의 한 단면임을 주장하고 있다"(설명서 참고)
그리 신선하지 않은 주제였다. 밑층으로 내려가 보지 말 것을 그랬다. 다시 급 우울해졌다. 그저 내게 이 바벨탑은 처음 이 구조물을 보고 뜻 밖의 신선함을 느끼게 해 주었던 그 존재 그 자체였으면 하기에,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
-가장 밝지만 무거운 색. 흰 색. "하태범-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김기라 전시실과 바로 맞은편에 붙어있어 하태범의 전시실을 보지 못했다. 들어가자 마자, 김기라의 전시와는 다르게 온통 흰색이었다. "가장 밝고 가벼우면서도, 순결을 상징하는, 깨끗한 색." 흰색. 그러나 흰색으로 쓰여진 글자들은 그리 깨끗하고 가벼운 내용을 담고 있진 않았다. "전쟁, 폭력, 기아. 온갖 재난재해"
작가는 왜 이러한 것들을 흰색으로 표현하려 하였을까? 흰색과 대비되는 무거운 주제들을 표현함으로서 사태의 심각성을 역설한 것일까? 흰색하면, 천국. 그리고 희망. 그러나 액자속의 조형물 사진들은 지옥, 희망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쉽지많은 않았다. 공통적으로 "사회현상에 대한 인간의 깊은 내면적 성찰" 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무거웠다. 심각하게. 그리고 심오했다. 너무. 그러나 이런 묵직한 감정과 심오한 기분은 한창 불안감에 요동치는 내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한 몫을 했다는 데에 그저 의미를 두고 명분을 살리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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