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러운,-그래서 더 뜨거웠던,..
- Lang Kim(김태엽)
- 2015년 9월 5일
- 3분 분량
삼청동 국립 현대 미술관. 덕수궁 미술관 보다는 한 버스를 더 타고 가야한다. 그래서 더 헤맷다. 서울 프레스 센터 앞에 바로 있는 종로11마을버스 정류장을 못 찾아 서울 시청 주위만 한시간 가량 기웃거렸다. 덕수궁 교대식이 다 끝날 무렵 겨우 정류장을 발견한 나는 가까스로 버스를 타 삼청동에 갈 수 있었다.
버스 안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커플, 짐 보따리를 가득 맨 할머니, 스마트폰 이라는 신세계를 이제 막 접하신 어르신 두 분... 그래서 버스 안은 조용하지 않았다.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느라 바빴다. 그래서 소란스러웠다. 아주 화기애애하게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마음이 뜨겁지는 않았다. 그저, 버스 창 밖으로 들어오는 햇살만이 짜증나게 따가울 뿐이었다.
오늘 내가 느낄, 대한민국 역사중에서 가장 소란스러웠고 그래서 더 뜨거울 수 있었던 그 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여유롭기도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은 철거 직전의 창고처럼 먼지만 퀘퀘히 쌓여있다.

"거장 이쾌대"미술전에 이어 또다시 광복을 향한 우리 선조들의 열망을 느끼러 뒤늦게 국립현대미술관을 향해 나섰다. 이번 전시는 1930년대 부터 45년 광복까지의 시기 뿐만 아니라 1970년대-1980년대 후반까지의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과정의 이면또한 생생하게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허나 그 둘 중에서 나에게는 1970-1980년대의 시기가 더 깊고 충격적으로 다가왔기에,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나라를 일으킨 장본인들이라 할 수 있는 70-80년대의 파견 근로자들, 공장 노동자들의 애상깊은 열망이 나에겐 이번 전시회 제목안에 "뜨거움"이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과도기가 거의 생략된 채 현대사회로 진입하고 있었던 우리 70-80년대 사회는 빈부격차, 장기 독재, 그를 통한 공포정치의 실시. 또 그에 대항한 학생운동. 근로조건 개혁운동등, 현재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문제들을 야기 시킨 그야말로 역동과 혼란이 복잡하게 뒤엉킨 "소란스러운"시점이었다. 따라서 그때당시의 예술가들의 주제도 변했을 터. 그게 바로 "풍자와 비판"을 베이스로 깐 작품들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주재환 작품의 "몬드리안 호텔". (주재환은 평소 유희성과 사회적 풍자를 담은 작품들을 통하여 한국 사회의 부패성에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상징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의 기하학적 격자무늬를 패러디 하여 이 작품에서는 각 칸막이를 러브호텔의 방으로 변형하였다. 주재환은 이 작품을 통해 시대 정신과 지성이 파묻혔던 당시 문화판의 현실을 은유하고 있다. -작품해설 중-
당시의 상황은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이루어 말할 수 없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우리가 커가면서 사춘기를 겪으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방황하듯이, 대한민국도 그러한 과정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의 해설 중 "시대 정신과 시정이 파묻혔던 당시 문화판의 현실을 은유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무슨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나도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잊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그동안 내가 한 행동들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진기종-CNN 2007년 (진기종의 작품세계는 시간을 요하는 꼼꼼하고 노동집약적인 수작업의 입증. 동시대적 사회현안과 근접한 긴장감 유지. 진부의 나락에 빠질 법한 주제를 유쾌하게 가공하는 손재주, 그리고 탁월한 미디어 활용으로 집약될 수 있다.-미술관 해설 중-)
진기종의 작품을 오늘 처음 접했다. 그리고 낚였다. 앞면에는 이 장면들이 마치 뉴스처럼 스크린 화면을 통해 묘사되고 있다. 나는 처음에 그 스크린만 보고 그저 9.11테러를 전달하는 뉴스를 캡쳐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쪽으로 이동하는 순간,. "...낚였다..!"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 "모순"이란 단어는 국어영역에서 쓰이는 "논리적 모순"이라는 단어에 국한된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말 그대로 진기종은 TV라는 가장 대중적인 소재를 통해 내용을 편집하고 구성하는 미디어의 일방적 소통과 조작 그리고 그 사이에 실재하는 현실과 가상에 대해 질문은 던지고 있다. 그리고 모니터 뒤에 설치물은 이 장면들이 연출된 가상의 장면임을 폭로하고 있다. 즉, 다시말해, 이 작품은 우리 생활에 깊게 들어와 있는 다양한 미디어 매체가 우리들을 교묘하게 속여 조종하고 있는 현실을 담백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지금 이 순간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순간들도, 가상이고,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일이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적 현실이라면, 나는 정말 어떠한 존재일까?
마치 진기종의 작품처럼.

휭케스트라-홍경택(2001-2005)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정말 이 작품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17년산 감수성으로 순전히 감상하고 싶었다. 무심코 그 작품을 봤을 땐, 거대한 팝 아트 같았다. 앤디 워홀의 "마릴런 먼로" 가 떠올랐다.


6.25를 단 4컷의 영상으로 표현했다. 꽤 단순해 보이지만 뒤에 들리는 효과음과 함께 감상을 한다면?,...그리 가볍게 볼 수있는 작품은 아닐 것이다. "소란스러운, 뜨거웠던"의 전시장중 입구에 위치해 있다. 1950년대에 일어났던 6.25참사를 현대 미술, 즉 영상미술로 제작하여 예술로서 전쟁을 표현했다. 전쟁이란 것은 정치로 보나 인문학적으로 보나 예술로 보나 절대 가벼운 현상을 아님을 깨달았다.

6시 정각에, 미술관이 문을 닫을 시각에 딱 맞춰 관람을 끝내고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후문 쪽에 거대한 장발이 걸처져 있었다. 그 곳은 누군가에겐 쉼터일테고, 또 누군가에겐 설치미술로서 단지 하나의 거대한 작품에 불과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이 거대한 장발이 나를 둘러싼 하나의 세상같았다. 마치 나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막을 오늘 처음 본 것 같았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때 약간 불투명하게 찍었다. 내 앞 일은 알 수 없으니까. 현재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년뒤의 나의 모습도 모르니까,.. 세상은 불투명 하니까, 나의 인생도 불투명한 유리막에 불과하니까,.. 그 막 사이로 사이사이 들어오는 따뜻한 빛깔의 햇살 덕분에, 불투명한 우리의 삶 속에서도 안도하고, 안주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비록 현실이 진기종의 CNN처럼 나를 향한 거대한 모순 일지라도, 그 모순 사이로 들어오는 작은 햇빛을 볼 수 있다면, 나는 그 모순적 현실에 안주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모순을 현실로 만들것이다. 왜? 비록 나의 인생과 앞일이 불투명 할 지라도, 내게는 확실한, 불투명한 앞길을 훤히 밝힐 수 있는 "꿈"이 있으니까,. 독하니까, 남들의 나를 향한 독설에 내 눈앞이 불투명 해질 지라도, 나에겐 오직 한 길밖에 없으니까, 계속 앞을 향해 달려나가면서, 앞을 딲으면 언젠간 투명해 지겠지, 이 사진도 선명해 지겠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오늘, 내 마음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꿈을 향한 계단을 밞음으로서 움츠려 있던 잡초에 꽃망울이 맺혔다. 뜨겁다. 행복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