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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안규철"

  • Lang Kim(김태엽)
  • 2015년 10월 25일
  • 4분 분량

지옥같았던 기말고사가 끝났다. 학교가 일찍 끝나 오전중에 집으로 가는데. 친구들의 표정은 제발 오늘만큼은 본인이 받은 점수에 상관 없이 승자처럼 즐길 것이라는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그럴만도 했다. 우리학교가 다른 학교들에 비해서 약 3주가량 늦게 본 편이었기 때문이다.기간도 길었다. 4일. 이 동안에는 모두가 정신없었다. 선생님, 친구들, 심지어 학부모들까지. 내가 어느정도 맞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은 김칫국 마시는것에 불과 했으며 뭐하고 놀까? 이런 생각은 사치였다. 공교롭게도 금요일날 딱 시험이 끝나 주말까지 총 2일 반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그 날도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과 PC방에서 더치페이로 돈을 내고 영수증을 받는 것 대신 혼자 학생증을 내고 미술관 무료 입장권(MMCA에서는 학생들에겐 학생증을 제시하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을 받는 쪽을 택했다. 지난 4일간 쪼들려 있던 내 감수성을 다시 펼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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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들어온 나는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휑 했다. 이제 막 SBS문화재단 주관 올해의 작가상 시상식이 끝나고 다른 전시실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 중이었다. 회반죽과 콘트리트 냄세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 냄세가 무엇 때문인지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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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박스프로젝트,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의 "대척점의 항구" 가 철거되고 박스형태의 철골구조물이 옮겨지고 있었다. "뭐지?... "일단 이 생각부터 들었다. 회색 철골 구조물만 보아서는 도무지 어떤 형태의 설치미술인지 상상할 수 없었다. 일단 돌아다녀 보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3층짜리 철골 구조물 속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는데. 더 신기한 것은 물이 글자모양의 형태로 쏟아져 내린다는 것이었다. 얼른 사진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찍었다.

어느새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찰칵소리를 내고 있었다. 작가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메세지를 전달 하는데 있어서 왜 굳이 "물"로 전달하는가? 에 대한 궁금증이 먼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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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안규철"-

"사랑" 이란 주제는 문명이 발생한 이래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진부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진부한 주제고 굳이 그걸 표현하는 그 모든 행위는 가식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설렘"이나 "두근거림"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요즘 K-POP에서 한창 떠들어 대는 "첫사랑의 두근거림" 이란 주제는 공감이 되지 않는다.

나는 불만이 아주 많았다. " 항상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식적으로 아름답게 꾸미려고 하는거지?.. 철학적으로 보자면 사랑이야 말로 인간의 꾸미지 않은 가장 자연스러운 본성인데... " K-POP, 드라마, 영화 들도 하나같이 일 방향적인 시각으로 사랑을 보고 있지 않은가? 내 마음속에 무언가 가득찬 그런 느낌?,, 그게 나를 구름속으로 두둥실 날라다 줄 것 같은 말로 설명 할 수 없을 두근거림?.....,

안규철은 달랐다.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5에서 선보인 안규철 작가의 "사랑"이란 단어는 희망찬 앞을 내다보게 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인식하기 보다는 그동안 내가 걸어온 삶, 나의 태도 등을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힘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사랑인가? 그 긴 시간들을 다 보내고나서 이제야 유행가처럼 속되고 흔하다며 외면했던 사랑을 만나게 되었나? 사랑은 너무 많고 싸구려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사랑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사랑을 얘기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되었나?...," 안규철의 작가노트 중에서

쓸쓸했다. 가을길 같았다. 연인과 함께하는 가을길이 아닌, 고독과 회한이 낙엽이 되어 마지못해 떨어져 내리는 눅눅한 길. 작가에게 사랑은 지나간 삶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단어에 불과했다. 안규철 작가의 전시실에는 의미있는 볼거리가 많았다.

<기억의 벽>

기억이라는 단어는 모호하다. 내가 어느것을 다시 환기 시킬 수 있는 능력을 때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것을 하고 싶지 않을때에는 약물을 써가면서까지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기억의 벽은 불특정 다수 관람자들과 함께 참여하여 함께 만드는 공동 작업 미술이다. 포스트잇에 본인이 평소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형식으로 카드로 벽이 다 채워지면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카드가 걸리게 된다.

나도 가서 우리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을 써 보았다. 그동안 야자끝나고 그 스트레스를 부모님께 풀었던 내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글자 몇자를 끄적이는 것 가지고 내가 그동안 부모님께 풀어왔던 짜증을 다 반성했다고 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가식이 되겠지..?

돌아보았다. 내가 부보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반성했다. 내가 부모님한테 죄송스럽게 때문에.

<아홉마리 금붕어>

예뻣다. 더욱이 슈베르트 즉흥곡(Improtus),Opus 90, 1번 3번 이 함께 어우러지니 그저 예쁜 예술작품 이었다. 하지만 물 속의 금붕어를 자세히 살펴보니 통로가 칸막이로 막혀있었다. 설명서에서는 이것을 "9개의 동심원으로 구획된 각자의 공간속에 고립되어있다"라고 표현하였다. 겉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인 금붕어는 그 예술작품 속에서 고립되어있다.... 무언가 맞지 않는듯한... 그런 설정이었다. 진기종의 "CNN"다음으로 몸소 느낀 역설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삶과 비슷해 보였다. 화려한 서울의 모던한 밤거리, 말끔하게 차려입은 거리의 사람들. 어디론가 발걸음을 바쁘게 옮기고 있는 모습은 흔한 주변의 도시의 아름다운 밤 풍경이다. 우리는 발걸음을 옮김으로서 모던한 도시의 야경을 연출하는 하나의 요소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삶에 있어서 우리는 정작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는가?. 도시의 야경을 구성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정말 집-직장, 또는 학원을 오가는 구속되고 밤을 밝힐 수 없는 어두운 발걸음 밖에 안되는 것일까?. .............,

<식물의 시간 II>

식물을 기른다는 것은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다는 일종의 sos동작중에 하나일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긴 생머리를 자르는 것처럼.

이 화분은 서로의 무게와 위치에 의해 평형관계를 이루고 있다. 도대체 무슨의미일까? 가장 이해하기 복잡한 작품이었다. "왜 화분을 저렇게 공중에 매달아 놓았지? 작가에게 있어서 화분이란 과연 무슨 의미일 것인가?솔직히 말하자면 이 작품은 굳이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다.었다. 의자에 앉아 무심히 공붕에 매달려 있는 화분을 보면서 꽃과 난초를 좋아하시는 우리 할머니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1000명의 책>

전시기간 동안 1천여 명의 관객이 국내외 문학작품을 연이어 필사하는 필경 작업이다. 처음에 필경 작업을 보러 전시실 내 설치ㄱ된 구조물 위로 올라가서 보았을 때 필경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마네킹인 줄 알았다. 진짜 사람이었다. 충격... 사람이 펜을 끄적이며 필경 작업을 하는 것도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그 가치관이 정말 놀라웠다. 참가자들은 "필경사의 방"에 마련된 책상에서 갖자 1시간씩 주어진 책을 필사한다. 이렇게 여러사람의 손 글씨로 완성된 필사본은 전시가 끝난 뒤 한정판으로 복제되어 참가자들에게 배포된다. 누군지 모를 것 아닌가? 각자 모르는 1000여 명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 보이지 않는 연대를 이룬다는 것. 이것도 하나의 보이지 않는 예술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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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단어를 통해 비로소 나는 나의 심란한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사람은 어쩌고 보면 고난과 시련을 견디며 끝내 성공의 결실을 맺는 지구상에서 제일 용감한 존재일 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냉철하다 할 지라도 "사랑" 그 두 단어에 일어서고 무너지는 감수성이 예민한 존재일 때도 있다. 이것은 나약한 것이 아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인간답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고,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안규철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전시회는 나에게 "비록 실패와 고난이 있을 지라도 너 스스로에게 의지해 가면서 앞이 안보이는 어두 컴컴한 미래의 길을 밝혀 나갈 수 있는 힘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힘들 땐 의지해야한다. 가끔씩... 너무 힘들다고 생각 할 때는 혼자 고개 숙이고 우는 것 보다는, 친구 어깨에 파묻고 큰소리로 우는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아무일 아닌듯 "늘 그래왔잖아....,"라고 생각하며 웃어 넘기기 보다는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같이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게....사랑일 것이다.

또한..진정한 용기일 것이고.

아마..... 인생이란 악보안에 한 가닥의 아름다운 음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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